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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보수주의자 레이건 대통령을 회상한다

직설적이지만 품위 있는 화법으로 고르바초프 제압
자유사상·애국심으로 2류국가 전락 위기 미국 일으켜

레이건의 비문

미국을 쇠퇴론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출한 대통령, 반세기에 걸친 소련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낸 대통령, 미국정치의 주류를 영원한 보수주의 정치이념으로 짙게 물들여 놓은 대통령… 하늘의 레이건 묘비는 이렇게 새겨져 있을 것으로 믿는다.

70년대 중반 미국내 주유소에는 자동차가 줄을 서서 얼마간씩의 휘발유 배당을 기다리고 있었다. 탄핵의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국제적 수치 속에 중도하차했고 월남전은 공산통일로 끝을 맺었고 아프리카의 앙골라, 중동의 아프가니스탄, 중남미의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등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으로 미국대사관 직원들 52명이 인질로 붙잡혀 있었고 미군의 구출작전은 아랍사막에 미 군사 헬리콥터의 잔해만 남겼다.

침체에 빠진 미국자본주의는 연 두자리 숫자의 인플레 속에 허덕이고 있었고 미국의 저명한 학자 폴 케네디는 미국의 전성기는 끝나고 이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예언했다. 사양길로 들어선 병든 미국이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도 패배할 것이 뻔한 듯했고 많은 우리 유학생들은 소련 공산주의가 미래의 물결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미국 국민들은 2류국가로 전락하게 될 미국의 운명을 감수하는 듯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침체와 비관과 체념의 늪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을 때 한국 나이로 70세의 2류 배우 였던 한 노인이 대통령 자리에 등장했다. 공산주의와의 생사를 건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쇠퇴주의 병을 앓고 있는 미국을 무슨 수로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사를 끝맺기 전 국회의사당 건너편의 알링턴 국군묘지를 바라보며 1차대전에 나가 전사한 한 시골 소년 마틴 트렙타우가 남긴 애국의 맹세를 인용했다.

“나는 일할 것이다. 나는 저축할 것이다. 나는 희생할 것이다. 나는 인내할 것이다. 나는 이 전쟁의 전 목표가 내 홀로에게 달려 있는 듯 즐겁게 싸우면서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미국 젊은이의 애국의 맹세는 얼마 전 대한민국을 부르짖고 태극기를 흔들며 소위 386세대를 뛰어 넘은 ‘영원한 20대’ 우리 젊은이들이 외침이 아니냐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진솔하고 순박한 애국의 목소리다. 레이건은 취임사에서 애국을 설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살아갈 자기 자신의 애국신조를 한 소년의 글을 통해 자백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는 의회에 나와 서부활극 속의 난장판이 된 마을에 되돌아 온 보안관을 묘사하듯 “미국은 되돌아왔다. 키 높이 서서…”(America is back, standing tall…) 라고 갈파할 수 있었다.
칠순을 지난 늙은 지도자 아래에서 쇠퇴주의 병의 검은 안개는 걷히고 밝은 아침의 햇빛 아래 자유의 재생력이 발동을 걸고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대통령

레이건은 가난했을 뿐 아니라 대학도 좋은 곳을 나오지 않았다. 영화배우도 2류배우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과 미국국민을 진실로 한없이 사랑했다. 그가 무장괴한에 의해 저격당했을 때 부인 낸시를 보자마자 “여보, 내가 엎드리는 것을 잊었단다.”라고 한 말은 “범인은 잡혔나. 잡아서 엄벌해…”하는 자기중심적 의식구조와는 너무도 다르다.

해마다 미국언론간부들이 초청돼 대통령과 유머와 농담을 교환하는 만찬장에서 한 언론인이 “대통령께서는 집에 가져간 공문서를 TV광고 시간에만 잠깐잠깐 읽는다면서요…” 하고 레이건의 게으름을 꼬집었다. “그것은 거의 맞지만 조금 틀렸소. 광고시간에는 광고를 열심히 보고 뉴스시간에는 공문서를 읽지요.” 만찬장에 폭소가 터졌다.

어느 기자가 “당신은 왜 그렇게도 국민들 간에 인기가 좋습니까?”하고 물었다. 즉석에서 그는 “아마도 나도 그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자를 포함해서 모든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한 대통령이었다. 참된 애국은 그곳으로부터 시작되며 참된 영도력은 그곳으로부터 나온다.

베를린 장벽 앞에 서서 “고르바초프 씨,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을 때 많은 미국지도자들이 겁을 먹고 걱정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호칭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화법과 화술은 우리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처럼 솔직하고 가식 없고 직설적이다. “저거 참 저러다 큰일 나지 않을지…”하며 공포감에 휩싸인 병아리 정치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레이건의 화법에는 격이 있고 위엄이 있었다. 저속한 싸구려 말투를 기피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의분은 강했지만 소련 고르바초프에 대한 증오는 없었다.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있고 가슴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 저 핵을 철거하시오!”라고 외칠 수 있고 북한을 ‘악의 계곡’이라고 호칭할 수 있는 대한의 지도자는 언제 어디서 나올 것인가. 부시가 우리를 대신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다고 꼬집는 비겁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아이슬란드에서 고르비와 핵 미사일 퇴치 협상을 벌이다가 끝내 결렬되고 서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고르비가 따라 나오면서 “낸들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고 항의했었다. 레이건은 고르비를 향해 “You could have said YES”(YES라고 할 수 있었잖나!)라고 쏘아붙였다.

위대한 전달자(Great Communicator)로 불린 그는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고 강한 화법을 썼지만 품격 없는 표현은 안썼다. 평양 가서 6·15 협상을 할 때 TV에 비친 DJ의 힘 없던 말소리가 눈을 가린다.

정부권력 만능 믿는 좌익 배척

레이건은 의사로부터 치매의 초기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1994년 11월 5일 ‘나의 친구 미국민에게’라는 고별 편지를 직접 써서 배포했다.

“… 끝으로 여러분들의 대통령으로서 여러분에게 봉사할 수 있게 허용해주신, 커다란 영광을 베풀어 주신 미국국민에게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는 때는 나는 이 우리들의 나라에 대한 최대의 사랑과 그의 장래에 대한 영원한 낙관을 안고 떠날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삶의 해저묾으로 이어질 여행길에 오릅니다. 미국의 앞길에는 언제나 밝은 아침이 있을 것을 나는 압니다. 감사합니다. 친구들이여, 하느님께서 항상 여러분을 축복하소서. 도날드 레이건”

그는 미국과 미국국민을 사랑했기 때문에 계급의식에 기초한 좌와 우의 분열정치를 멀리했다. 그 대신 그는 좌냐 우냐 보다 한차원 높은 ‘영원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소지자였다. 개개인의 행복의 기초인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힘을 무한히 키우고 신장시키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선택은 실로 (좌냐 우냐가 아니고) 위로 가느냐 아래로 가느냐가 아닌가요? 아래로 향해 국가주의로, 복지국가로(정부가 가난한 계층을 돌봐줘야 한다는 현대판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더 많은 국가 권력이 따라붙는 정부돈 선심 쓰기로, 더 적은 개인의 자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체주의 독재로 향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언제나 우리들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내세우는 길. 이와 대치되는 또 하나의 길은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의 꿈인 올라가는 길 즉 질서 있는 사회 속에 개인의 자유의 극치를 향해 올라가는 길이다…”

레이건은 정부권력이라는 것은 본질상 끝없이 비대해지는 억압의 괴물, 개인의 자유를 짓밟고 개인의 재산을 먹어치우는 공룡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정부가 그 권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는 좌익 진보주의적 시각을 철저히 불신하고 배격했다. 모든 종류의 부패도 따지고 보면 정부권력에 따라붙어 다니는 똥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은 거짓이다. 바로 ‘정부 자체가 문제’라고 갈파했다. 국민의 등에서 정부라는 원숭이를 떼주자고 호소했다. 그가 공산주의독재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싫어한 것도 그의 이러한 자유의 힘과 가치를 신봉하는 ‘영원한 보수주의 신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 최대의 군비확충사업도 소련의 억압체제가 얼마나 사악한가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바람 일으킨 레이건의 개혁

그의 개혁은 정부권력을 빼앗아서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정부의 ‘자기 부정적 개혁’이었다. 사상 최대 가장 큰 감세조치를 통해 국민이 번 돈을 국민에게 최대한 되돌려주는 개혁이었다. 침체 속에 허덕이던 미국경제에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제거해줌으로써 국민 개개인의 창의와 창업정신을 최대한 북돋워주는 개혁이었다.

정부를 믿고 정부에 의존하는 개혁이 아니고 국민을 믿고 국민에게 의존하는 개혁이었다. 정부와 관료에게 힘을 실어주는 개혁이 아니고 국민에게 힘을 실어주는 개혁이었다. 국민이 정부보다 더 현명하고 선하다는 것을 믿는 개혁이었다.

미국국민들간에 신바람이 일어나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또다시 뛰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쇠퇴주의와 패배주의 대신 미국 고유의 자신감과 낙관론이 무지개처럼 떠올라 펼쳐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미국 경제의 엔진이 다시 우렁차게 시동했다.

당시 타임지는 하늘을 두 팔 벌려 나는 미국국민의 행복감을 그 표지에 띄웠다. 이윽고 그가 ‘악의 제국’이라고 갈파한 소련 공산주의체제가 미국과의 군비경쟁의 중압을 못이겨 무너지고 반세기에 걸친 냉전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이 유일 초강국으로 21세기 역사무대에 우뚝 등장했다.

인류가 어떤 형태든 조직체를 꾸며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정치권력을 경계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믿는 레이건의 ‘영원한 보수주의’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염원과 함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그의 이름도 20세기 역사 안에서 하나의 커다란 별같이 빛날 것이다. 영롱한 한미동맹의 별과 함께…


미래한국신문 특별기고  
박근 한미우호협회 회장·전 UN대사
  

2013년 02월13일 15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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